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상대 팀을 비하하거나 존중하지 않은 게 아니다.”
지난달 28일 한국시리즈 5차전의 또 다른 관심사 중 하나는 KIA 타이거즈 ‘뇌섹남’ 곽도규(20)의 ‘이의리 세리머니’였다. 곽도규는 5-5 동점이던 6회초에 세 번째 투수로 등판, 1이닝 1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구원승을 따냈다.
곽도규는 2사 1루서 이재현에게 투심을 던져 3루 땅볼을 유도하고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때 약간의 돌발 행동을 했다. 갑자기 유니폼 상의의 단추를 풀고 양 옆으로 쫙 벌렸다. 알몸(?) 공개가 아니었다. 곽도규는 유니폼 상의 안에 ‘이의리’와 ‘48번’이 마킹된 옷을 입고 있었다.
곽도규는 KIA의 3루 응원석을 향해 그대로 그 모습을 보여줬다. KIA 팬들은 깜짝 놀란 뒤 이내 열광했다. 그리고 곽도규의 세리머니는 당연히 삼성 라이온즈 사람들과 삼성 팬들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짧고 굵은 세리머니에 그라운드가 더욱 달아올랐다.
알고 보니 KIA에서도 사전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의리도 당연히 몰랐다. 곽도규가 아무도 몰래 팀 스토어에 부탁해 준비한 이벤트였다. 그날 KIA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고, 우승 직후 두 사람은 연락을 나눴다.
곽도규는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의리 형에게 연락 왔다”라고 했다. 이벤트의 목적은 KIA의 사기충전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진 채 재활하는 이의리에게 힘이 되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었다. 이의리는 6월에 토미 존 수술을 받았고, 내년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재활 중이다. 자신과 싸우는 시간이다.
일각에선 삼성을 향한 도발 아니었느냐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곽도규는 “그렇게 보였다면 당연히 내 잘못이지만, 상대 팀을 전혀 비하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 팀의 사기가 좀 더 올라가길 바란 행동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곽도규는 "자신감도 있었고 그런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준비도 했다. 공 하나하나에 집중했던 게 컸다. 내년엔 의리 형과 오랜 시간 야구장에서 함께 하고 싶다"라고 했다.
곽도규는 한국시리즈서 필승조로 활약했다. 4경기에 등판, 무려 2승을 홀로 책임졌다. 4이닝 2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매우 잘 던졌다. 공 빠른 스리쿼터. 장기적으로 KIA 불펜의 에이스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무리도 도전 가능할 듯하다.
그런 곽도규는 뇌섹남이다. 프로에 지명받지 못할 줄 알고 공부한 영어가, 프로 입단 이후 아주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외국인투수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하며 야구에 대한 피드백을 제대로 주고 받는다. 본인은 의사소통 수준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정도를 넘어선 것 같다.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센터에서 피치터널을 좀 더 정립해 공부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구단 관계자는 “도규가 공부만 했어도 잘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인터뷰를 해보면 어휘선택과 문장력이 남다르다. 그냥 쏟아내는 말인 듯하지만, 깔끔한 화술을 선보인다. 야구를 잘 하는 선수가 공부까지 하니, 쭉쭉 성장하는 건 당연하다.
자신이 아꼈던 와인드업과 어깨 흔들기 루틴도 중심이동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며 폐기한 선수다. 본인은 언젠가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자기 객관화’가 상당한 수준이다. KIA 마운드가 올해 보물을 발견했다.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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