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어떻게든 이기자"
롯데 자이언츠 정훈은 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KT 위즈와 팀 간 시즌 14차전 홈 맞대결에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정훈은 이날 2회말 2사 주자 없는 첫 번째 타석에서 KT '에이스' 웨스 벤자민을 상대로 129km 슬라이더에 삼진을 당하며 경기를 출발했다. 하지만 최근 타격감이 나쁘지 않은 정훈에게 두 번의 수모는 없었다. 정훈은 0-4로 뒤진 5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벤자민의 2구째 144km 직구를 공략해 우중간 방면에 2루타를 뽑아내며 팀에 찬스를 안겼다. 그리고 이때 박승욱이 추격의 적시타를 터뜨리며 한 점을 따라붙었다.
활약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7회말 빅터 레이예스가 포문을 열고, 전준우가 따라붙는 1타점 2루타를 터뜨린 가운데 정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벤자민과 5구까지 가는 승부를 펼치자, KT가 승부수를 띄웠다. 2B-2S의 상황에서 벤자민을 내리고 '필승조' 김민을 투입한 것. 하지만 베테랑은 당황하지 않았고, 김민이 던진 초구 134km 슬라이더를 받아쳐 우중간에 다시 한번 2루타를 폭발시키며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적시타를 터뜨림과 동시에 다시 한번 롯데에 기회를 안긴 정훈은 곧바로 대주자 장두성과 교체됐지만, 이때부터 롯데 타선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정훈의 적시타로 3-4로 KT를 턱 밑까지 추격한 롯데는 나승엽이 동점타를 터뜨린 뒤 대타 이정훈의 역전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KT 3루수 오윤석의 실책으로 한 점을 쌓았고, 1사 만루에서는 빅터 레이예스가 자신의 아웃카운트와 한 점을 맞바꾸는 등 7회에만 6점을 수확하며 7-5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승리로 롯데는 하루 만에 7위 자리를 되찾았고, 5위 KT와 격차를 2경기로 좁히는데 성공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정훈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정말 해보려는 마음이 가득한 것 같다. 솔직히 1위 팀과 붙어도 차이가 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예전에는 '그냥 최선을 다하자'에서 끝이었다면, 지금은 '어떻게든 이기자'는 마음이다. 그래서 연패도 길지 않고, 자꾸자꾸 이겨지는 것 같다"고 덤덤한 소감을 밝혔다.
정훈은 지난달 3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불명예' 기록을 세울 뻔했다. 첫 번째 타석부터 무려 5연타석 삼진을 당했던 까닭. 6연타석이 됐다면 이는 불명예 기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정훈은 연장 12회초 2사 만루 찬스에서 두산의 바뀐 투수 박치국을 상대로 결승타를 폭발시켰고, 5타석 연속 삼진의 수모를 극복하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훈에게 잠실 두산전은 악몽인 듯했다.
그는 "지명타자를 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거의 처음 해본 것 같다. 두 번째 타석까지는 괜찮았는데, 3~5번째 삼진 당할 때에는 어디 있을 곳이 없더라. 라커룸도 못 가겠고. 만약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가 안 나왔으면 타격이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감독님께서 끝까지 내보내 주셔서, 다행히 팀도 이기고 나도 하나 쳐서 좋은 기운이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이후 감독님과 나눈 대화는 없다. 그 이후로 감독님을 조금 피해 다니기 바빴고, 최대한 동선이 겹치지 않게 돌아다녔다"고 쑥스럽게 웃었다.
정훈은 인터뷰 내내 팀에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92경기에 출전해 68안타 9홈런 44타점 타율 0.270 OPS 0.800을 기록할 정도로 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특히 후배들이 안타, 홈런을 칠 때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팀에 파이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밖에서 봤을 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베테랑의 독려는 어린 후배들에겐 큰 힘이 되고 자신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내 위치가 그런 것 같다. 정말 위치인 것 같다. 경기 결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어린 선수들이 너무 생각보다 잘 따라준다. 질문도 많이 하고, 내가 안타를 치는 것에서 너무 기뻐해 준다. 그런 모습들 덕분에 오히려 내가 후배들에게 더 파이팅을 넣어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해다.
정훈은 현재 전준우와 함께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5위 KT와 격차가 2경기로 좁혀졌지만, 방심하지 않았다. 정훈은 "과정은 잘 모르겠다. 무조건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가장 많은 경기가 남았기 때문에 몇 승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냥 한 경기에 체력을 다 쓴다는 생각"이라며 "내가 오래 롯데에 있어본 결과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있기에 다른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만 해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훈은 이날 의도적으로 밀어치는 타구를 두 개나 만들어냈다. 이는 암묵적으로 후배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연습할 때도 좋다는 느낌을 안 받았다. 하지만 경기에서 나오는 부분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컨디션에 상관없이 치려고 한다. 오늘 밀어친 타구도 2루수 쪽으로 굴리자는 생각에서 나왔다. 후배들도 그런 것을 다 보고 있기 때문에 팀적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롯데 속해 있는 모든 선수가 가을야구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훈과 전준우는 조금 남다를 터.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이후 부진한 성적에 그 누구보다 힘겨워하고 있는 정훈. 하지만 베테랑으로서 경기에 나서지 않아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 간절함 바람이 클러치 상황에서의 결정적인 결과로 이어졌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것이 바로 베테랑의 가치가 아닐까.
부산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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