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팔자에 역마살이 낀 사람이 여행을 떠나는데 거창한 이유가 꼭 필요하랴. 헐값에 나온 항공권을 발견했으니까, 여비로 쓸 만한 돈이 생겼으니까,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더니 좀이 쑤시니까, 땡처리 패키지 상품이 딱 맘에 드는 코스니까 등 핑곗거리를 찾아대며 나라 밖으로 슬금슬금 눈을 돌리곤 했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팔라우를 여행할 때는 좀 색다른 이유를 댔다.
“팔라우는 미크로네시아에 속한 나라인데, 평생에 한 번은 미크로네시아 구경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
‘신들의 바다 정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지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는 설명에 혹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가 보니 팔라우는 동남아시아 휴양지의 소박한 거리 풍경과 눈부신 바다 풍광을 합쳐 놓은 듯한 곳이었다. 특히 바닷속 세상은 비할 데 없이 환상적이므로 평생에 한 번은 가 볼 만한 곳이 분명하다.
미크로네시아 다른 나라와 함께 오세아니아주에 속하지만, 필리핀 옆에 위치해 동남아시아처럼 가까운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겠다.
현재는 팔라우 직항편이 없어졌지만, 워낙 매력적인 여행지다 보니 머잖아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면 그곳을 찾는 이도 늘어날 텐데, 그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이 글을 쓴다.
인구가 2만여 명에 불과한 팔라우는 관광객이 뿌리는 돈 외에는 별다른 수입원이 없는 듯하다. 워낙 작은 섬나라라 공장이라든지 대규모 농장이라든지 하는 시설은 들어설 자리가 없기도 하다. 그래도 자신들이 먹을 채소 정도는 텃밭을 일궈 생산할 만도 하지만,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팔라우 사람들에게 농업 기술을 가르쳐 주고자 타이완에서 투자하여 세운 농업기술센터에서 오이 생산에 겨우 성공한 수준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열대 지방에 가서 코코넛 하나를 사 먹지 못했을까. 그것은 토양이나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힘들여 생산한다는 의식이 그들에게 없는 까닭인 듯했다. 그러니까 지천으로 널린 코코넛 나무에서 열매를 따다가 파는 단순한 일조차 하지 않는 것일 테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식값이 무척 비쌌다. 음식 재료 대부분을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온다니, 비쌀 수밖에 없겠다. 햄버거 하나에 우리 돈으로 8000원 정도 하였으니(2013년 기준), 나머지 물가도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한 번은 ‘더 타즈’라는 인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우리 가족이 주문한 것은 탄두리 치킨 한 마리, 볶음밥 하나, 난(얇은 빵) 두 장, 커리 소스 세 종류, 라씨 석 잔, 짜이 두 잔이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답게 이국적인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 맛도 괜찮았다.
문제는 계산할 때였다. 우리 돈으로 17만 원이 넘게 나왔으니 말이다. 거기에 봉사료까지 포함해 계산하자니 손도 떨리고 가슴도 떨렸다.
인도 식당에서 팔라우 물가를 실감한 뒤, 다음 끼니는 ‘모그모그’라는 씨푸드 레스토랑에 가서 짠돌이처럼 인색하게 주문했다. 그런데도 10만 원이 훌쩍 넘게 나오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어 다음 날은 결국 한인 마트에 가서 컵라면과 김치, 단무지 무침 등을 사다가 끼니를 해결했다. 그제야 얇은 지갑에 대한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일이니 그동안 팔라우 사정이 달라졌을 수 있다. 하여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
혹시 팔라우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음식값이 비싸다는 점을 고려하여 여행 가방에 먹을거리를 좀 챙겨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지갑이 금세 홀쭉해질 테니 말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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