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저자: 전혜원 |서해문집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북에디터 유소영]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처음 읽었을 때는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자 문제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가 자꾸만 죽어나는 쿠팡을 끊었고, 피 묻은 빵을 파는 SPC를 불매하기 시작했으며,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에 대해 의식하게 됐다.
그러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는 나의 노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요즘 나를 괴롭힌 ‘주 52시간제’와 내가 지금 너무 바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출판사로는 드물게 야근 수당을 준다. 때문에 나는 야근 수당 받으려고 남아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집에 30분이라도 일찍 가려고 저녁도 안 먹고 일하는데 종종 ‘습관성 야근’이라는 말을 듣는 게 불편하다.
한 번은 일이 너무 몰려 어쩔 수 없이 밤을 새고 철야 근무 신청서를 냈더니 회사에서 “이미 주 52시간 근무를 넘었다”며 내 신청서를 반려했다. 기계에 찍힌 내 근무기록에 대한 사유서를 제출한 것뿐인데 상사는 내 앞에서 신청서를 죽죽 찢었다.
그렇게 말로만 알았던 ‘주 52시간’이 내 앞에 현실로 다가온 셈이다. 나의 엔드리스 노동을 방해(?)하는 주 52시간이란 무엇인가?
법정 노동시간 40시간과 노사가 합의할 경우 추가해서 일할 수 있는 12시간을 더해 바로 주 52시간이다. 이 제도는 노무현 정부 때이던 2004년에 이미 도입됐다.
그런데 당시 노동부가 근로기준법 노동시간 관련 조항을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주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단 일주일은 주말을 제외한 5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말에는 하루 8시간씩 최장 16시간 더 일해도 된다’고 해석했다. 이 행정해석 아래 노동자는 더 긴 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그러다 2008년 성남시 환경미화원이 소송을 낸 지 10년 만에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최장 노동시간을 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정상화했다. 그동안 이미 주 68시간제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10년 만에 대법원 판결로 결정됐다.
전문가는 세계적으로 봤을 때 그동안 한국 노동운동 진영이 노동시간 단축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게 특이하다고 지적한다. 아마도 노동자는 오래 일해서라도 더 많은 소득을 얻고자 했고, 기업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편을 선호했기 때문에 일종의 ‘노사담합’이 성립된 것 같다. 싼값에 노동자를 부리려는 기업과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지 못한 정부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나는 더 많은 수입을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종종 일이 너무 바쁠 때가 있다. 내가 마감이어서 바쁠 때도 있고, 팀원이 마감이어서 바쁠 때도 있다. 출판사는 “야근이 없으면 책이 안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소설가 황정은은 ‘노동은 신성한 것인가. 노동은 일단 비싸야 한다’라고 썼다.
우리도 노동이 비싼 사회가 되길 바란다. 노동자가 고육지책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을 미련하다 하지 않으며 돈 때문에 사람이 일하다 죽어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북에디터 유소영. 책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느라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것이 슬픈 출판 기획편집자. 요즘은 눈을 감고도 읽을 수 있는 오디오북에 빠져 있다.
북에디터 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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