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아이가 발달 지연 치료를 받은 지 1년이 지났다.
놀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시작으로 작업치료,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 언어치료사 권고로 놀이치료의 하나인 음악치료도 추가했다. 많은 치료를 효율적으로 하려고 낮 병동을 이용했다가 치료 방향을 바꾸어 ABA(응용행동분석) 치료를 새로 시작했다.
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다. 처음 치료를 시작하고 두어 달 동안 아이는 치료실 문을 닫아도 센터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크게 울고 때로 치료 시간 중 잠들기도 했다. 아이에게 더 잘 맞는 병원과 치료사를 찾아 헤매고, 아이가 좋아하는 치료사가 퇴사하는 아쉬움을 겪기도 했다.
외래 치료에서 낮 병동 치료로, 낮 병동에서 다시 외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치료가 중단되며 순번이 기약 없이 밀렸고, 다시 여러 기관에 대기를 걸고 일정을 조율하느라 고생했다.
아이는 이제 일주일에 ABA 치료 2회를 받으며 놀이치료와 음악치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를 1회씩 한다.
그동안 재활의학과에서 정기적으로 베일리 검사를 받았다. 베일리 검사는 인지, 언어, 운동, 사회정서, 적응행동으로 나누어서 결과가 나온다. 생후 12개월 첫 검사를 시작으로 18개월, 24개월에 검사를 실시해 벌써 세 번의 검사 결과지가 쌓였다.
아이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세 개의 검사지를 나란히 펼쳐놓자 6개월마다 한 번씩 볼 때는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발견했다. 세 번의 검사 결과가 모두 같았다. 운동 발달이 평균 하, 언어는 발달 지연, 나머지는 경계선 수준으로 나타났다. 점수로 환산되는 구체적인 수치마저 놀랍도록 유사했다.
그동안 아이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했는데 발달검사 결과는 이토록 변화가 없었다. 물론 12개월에 기대되는 수준과 24개월에 기대되는 수준이 다르니, 매번 검사 결과가 똑같다는 것은 적어도 성장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발달에서 늘 말하는 ‘따라잡기’는 되지 않았다. 따라잡기란 상대적으로 발달이 느린 아이가 또래 수준이 되는 것을 말한다.
소아정신과에서 처음 진료를 봤을 때 의사는 내게 아이가 일반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초등학교 입학 전에 발달을 따라잡는 걸 목표로 한다고 했다. 그때 속으로 내 아이가 당연히 그보다 훨씬 전에 정상 발달 소견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기까지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학업 스트레스가 심한 학생에게 남과 비교하지 말고 하루하루 자신이 얼마나 성장하는지를 느끼라고 말하곤 했다. 어제의 나는 몰랐던 것을 오늘의 내가 알게 되었다는 기쁨으로 공부해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나는 수험생 시절을 그렇게 버텼다. 그러나 나는 쉼 없이 달리고 있는데, 저기 앞사람과 도무지 격차를 줄일 수 없다는 느낌이 들 때 실망감이 밀려오는 걸 어쩌랴. 선생이랍시고 학생에게 하는 조언이란 게 늘 이 수준이다.
교사로 일하며 그간 내가 만난 학생이 1000명은 족히 넘을 텐데, 느린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그 아이들 한 명 한 명이 얼마나 기특한지 깨닫는다.
그들도 아장아장 걷고 오물오물 먹으며 자랐겠지. “엄마 엄마” 하다가 더듬더듬 말을 배우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다가 제 이름도 썼겠지. 학교에 간다고 책가방을 메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에 들어왔구나.
세상이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국어 교사는 갈수록 말을 잃는다. 명색이 국어 교사인데 점점 학생들에게 멋진 말을 해주지 못한다. 다만 가만히 등을 토닥여 줄 뿐.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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