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20대 중반 처음으로 담임 교사를 맡았다. 중학교 2학년 반 담임이었고, 수업은 2학년과 3학년에 들어갔다.
중간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시험 시간에 교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감독으로 들어갔던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아침에 반 아이들 전자기기는 모두 걷으셨죠?” 나는 아이들 전자기기를 수거해 보관하는 가방을 보여주며 “네,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그 선생님은 우리 반에서 시험 중 휴대전화 알람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소지품을 검사하자 우리 반 학생과 3학년 학생이 발각됐다. 전자기기는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정행위로 처리된다. 그 시간에 치른 시험 점수는 모두 0점이 된다. 하필 내 담당 과목인 국어 시험이었다.
적발된 3학년 학생이 내게 와서 “선생님, 어떡해요”라며 울었다. 국어 수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진심으로 다독였다. 또 “한 번 잘못으로 인생은 망하지 않아, 다음엔 그러지 마”하고 위로했다.
그러나 담임 교실에서는 달랐다.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던 아이가 훌쩍거리는 모습을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네가 뭘 잘했다고 울어!”하며 윽박질렀다. “전자기기 소지 문제를 여러 번 강조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거냐”고 추궁했다.
간혹 이 일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제야 그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자기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온몸으로 맞은 아이를 또 그렇게 다그쳤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지금이라면 그렇게 닦달하지 않았을 텐데.
당시 학교에서는 담임인 내가 아이들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더 엄격하고 화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짐작해 본 일이 있다. 그때 담임 반 학생에게만 그렇게 화가 나더니, 지금은 내 아이에게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과 산책하다가 악쓰듯 우는 아이를 보았다.
“나는 애들이 저렇게 우는 거 보면 좋더라.” 남편은 “있는 힘껏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아이 울음소리라면 질색인 나는 그런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본래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난 누구보다 노키즈 존이 편안했다.
첫 조카가 태어났을 때 내가 아이를 이렇게 예뻐할 수 있다는 점이 스스로 놀라웠다.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도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기르며 달라졌다. 마주치는 모든 아이가 사랑스럽다. 내 아이보다 어린 아기는 마냥 귀엽고, 내 아이보다 큰 아이는 대견하기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 다른 아이가 우는 소리가 싫지 않다. 귀엽고 안쓰러울 뿐이다.
그런데 왜, 내 아이에겐 그렇지 않을까.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내 신경은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워진다. 자꾸만 화부터 나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스린다.
시어머니는 아이가 아무리 패악질을 해도 늘 엄격한 동시에 다정하게 대하신다. 어머님은 처음부터 그러셨을까 궁금했다. 남편은 어릴 적 어머님이 꽤 엄하고 무서운 분이었다고 했다. 어머님도 시간이 지나며 달라지셨을까. 그럼 나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까.
내 첫 담임 반 아이에게 전하지도 못할 미안한 마음이 이제야 가득하듯이, 20년쯤 지나서야 오늘 내가 아이에게 화낸 일을 미안해하고 있을는지. 아이도 인생을 처음 사는데, 나도 엄마의 삶은 처음이라 우린 늘 우당탕댄다.
남편에게 물었다. “예전에 애들이 악쓰며 우는 거 보면 좋다고 했잖아. 우리 애가 우는 거 보면 어때?” 남편이 멋쩍게 웃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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