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마이데일리 = 이예주 기자] 배우 정소민은 20대까지의 삶을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악바리 근성을 가진 그는 고교시절 한국 무용콩쿨을 휩쓸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졌음에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으며, 부모님 몰래 배운 연기 실력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얼핏 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정소민이었지만 자연스럽게 그에게도 압박감이 찾아왔고, 이를 내려놓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서 배석류가 겹쳐져 보였다.
최근 마이데일리는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정소민을 만나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엄마친구아들'과 연기자 정소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친구아들'은 오류 난 인생을 재부팅하려는 여자와 그의 살아있는 흑역사인 '엄마친구아들'이 벌이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극중 정소민은 여자 주인공 배석류 역을 맡았다. 배석류는 명문대학을 다니던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일류 기업인 그레이프에 입사해 국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남성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손색없는 '엄친딸'의 삶을 살고 있던 배석류였지만, 그는 돌연 모종의 이유로 파혼을 하고 직장을 그만둔 뒤 고향인 혜릉동으로 돌아온다.
이날 정소민은 "개인적으로 응원하고 싶은 캐릭터 석류를 만나서 행복했다. 석류를 알아가면서 나도 적지 않은 위로와 힐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랑스럽고 밝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지만, '엄마친구아들'은 극 중반부부터 배석류가 혜릉동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하고, 이 과정에서 성장해나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그린다.
정소민은 "석류가 몸도 마음도 아팠다. 누구나 살다 보면 번아웃이 올 수 있고, 내가 나를 컨트롤하기 더는 힘들어지는 시기가 올 수 있다. 그런 석류를 보면서 석류에게 공감도 하고, 위로도 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8화 말미 배석류가 미국에서 암 투병을 했다는 사연이 전해지며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소민은 "애초에 촬영 전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고 인지를 하면서 초반 촬영을 이어갔다. 그래서 드라마를 다시 보시면 '아 얘가 이래서 이랬구나'라고 이해가 가는 포인트가 있을 거다. 예를 들어 승효에게 '왜 그렇게 네 몸을 혹사시켜가면서 밥도 안 먹고 일을 하냐, 너 글로벌 호구야?'라고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가 아팠다는 설정을 모르고 촬영했다면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 않았을 것 같다. 석류는 예전의 나를 너무 혹사시킨 것 같아서, 승효에게서 또 다른 내가 보여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석류가 암 투병을 했다는 점을 계속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극 사이사이 'K-장녀' 배석류의 고충, 남동생과의 갈등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정소민은 "석류가 장녀로서 지고 있는 책임감과 무담감, 부담감을 스스로 당연시 여기고 있던 아이인데, 그것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과정을 응원하고 싶었다"며 "나도 장녀다 보니 공감가는 부분들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실에서 동진이와 석류만큼 (동생과) 싸우지는 않아도 얄미울 때가 있고, '왜 내가 이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 가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런 점을 극대화시켜서 석류에게 녹여내려고 했다"고 전했다.
극 말미, 우여곡절 끝에 배석류는 요리라는 꿈을 찾고 자신의 식당을 운영하며 같은 아픔을 가진 손님들에게 희망을 전한다. 발레와 무용을 하던 정소민이 연기자로 성장한 것과 닮아있었다.
정소민은 "그래서 더 (석류를) 응원하게 됐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은 세상인데, 그러다 보니 석류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되더라. 돌이켜보면 나도 무용이 좋아서 했던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더 좋아하는, 더 사랑하는 일을 만난 게 감사하다. 내 판단을 믿은 과거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30대 이후에 많이 편해졌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때로는 사람을 나아가게 해주지만 때로는 나를 너무 갉아먹게 되더라. 쉼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석류처럼 나도 너무 힘주고 달리다 보니 거기서 오는 힘듦이 있더라. 그래서 '이젠 내려놓고 좀 더 즐겨보자,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것들로 내 삶을 채워보자'는 다짐을 20대 말에 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다짐을 해도 바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시간이 필요하더라. 어떤 내 가치관의 변화를 주고 나서 부터 그걸 체화시키고 완벽히 소화시키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방향을 잡는게 중요하단 걸 깨달았고 방향을 잡은 다음에 내 것으로 만드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다짐대로) 살다보니 어느순간 삶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처럼, 어느덧 데뷔 15년 차가 된 정소민은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으로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묻자 "거창한 목표가 있진 않은 것 같고 무탈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원래는 (내가) 힘이 많이 들어가 있던 사람이었다. 성취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었다. 여전히 (성취감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 나의 편안함을 좀 더 우선순위에 두는 걸로 바뀐 것 같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러면서 "차기작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 좋은 작품을 기대중이다. 당분간은 일단 좀 쉬면서(웃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일상을 다시 채워나가고 싶다. 잘 쉬는 것도 일의 일환이더라"고 덧붙였다.
이예주 기자 yejule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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