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상구·피난계단 위치 안내 필수…상시 개방 상태 유지
피난사다리·완강기 사용법 등 의무교육 규정 마련 시급
‘Who Is 정혜선?’
-가톨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부천근로자건강센터 센터장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
정혜선 한국보건안전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서울대학교 간호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제조업 사업체 보건관리자를 시작으로 고용노동부 산업보건전문위원을 거쳐 30년간 산업재해와 직업병 예방을 위한 활동에 매진해 온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감정노동자의 건강보호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산업안전보건법에 감정노동자 보호조항이 신설될 수 있도록 했고,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전화멘트가 시행되는데도 기여한 바 있다.
또 국내 최초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보건관리를 위한 근로자건강센터를 고용노동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했으며, 현재 부천근로자건강센터장으로 재직하면서 부천지역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의 안전보건 확립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마이데일리 = 신용승 기자] “우리의 생명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여건 마련 필요합니다.”
지난 6월 24일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8월 22일에는 경기도 부천시 한 호텔에서 7명이 숨지는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두 달 사이에 화재로 인해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긴급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상 탈출방법을 안내해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대규모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1. 상시 사용할 수 있도록 비상구 설치
리튬과 같은 위험물질을 제조·취급하는 작업장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근거해 안전한 장소로 대피할 수 있는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 비상구는 출입구와 같은 방향에 있지 않고, 출입구로부터 3m 이상 떨어진 곳에 마련된다. 신속한 대피를 위해 비상구까지 수평거리가 50m 이하가 되도록 해야 한다. 비상구의 문은 피난 방향으로 열리도록 하고 실내에서 열 수 있는 구조로 돼 있어야 하며, 비상구에 설치된 문은 항상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이와 같은 규정에도 불구하고 화성시 아리셀 공장은 비상구로 나가는 문을 ID카드가 있거나 지문등록이 된 정규직 근로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비정규직이었던 외국인 근로자들은 비상구를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은 안전교육을 거의 받지 않아서 비상구의 위치조차 알지 못해 화재 상황에서 대피할 수 없었다. 이들이 근무하던 곳에서 비상구까지의 거리는 60m에 불과했기 때문에 누군가 이들을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상구의 위치와 존재는 모두에게 알려야 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없이 비상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외부로 연결된 피난계단 및 피난사다리 이용
‘건축법’ 시행령 제36조에는 외부로 통하는 옥외 피난계단을 설치하도록 돼 있는데 이는 공연장이나 문화시설 등에만 적용되고 있다.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건축물이 5층 이상인 경우 건축물의 바깥쪽에 지상으로 통하는 피난계단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일용직 근로자나 투숙객 등은 그 계단으로 나가는 출입구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출입구를 물건 등으로 막아 놓으면 피난계단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누구나 피난계단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눈에 잘 띄게 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피난사다리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피난사다리는 고정식, 올림식, 내림식 등의 3개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정식이 아닌 경우는 수납식, 접는식 형태로 돼 있다. 이런 경우는 피난사다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고 피난사다리를 펼치는 방법을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다.
3. 생명의 줄 완강기 사용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피난기구로 피난사다리, 구조대 외에 완강기나 간이완강기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완강기는 고층에서 불이 났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천천히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비상용 기구이다. 금번 화재가 발생한 부천의 호텔에도 각 객실마다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투숙객들은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맨 몸으로 에어매트로 떨어진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완강기는 15층 이하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수 있는 피난도구이다. 하지만 완강기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완강기 사용법을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각종 법률에는 응급 상황에 대피할 수 있는 다양한 규정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관련 법률마다 설치해야 하는 시설과 건축물의 기준이 다르게 규정돼 있고, 여러 소방시설 중 한 두가지만 설치하면 다른 시설은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완화돼 있다.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소방시설, 안전시설, 피난시설, 구조시설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돼야 한다. 비상구가 있다고 피난계단을 설치하지 않고, 완강기가 있다고 피난사다리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대피에 실패한다. 이는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유발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안전의 기본원칙이다.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황하거나 무서워해 대피구 등을 쉽게 찾기가 어렵다. 직장이나 회사에서는 평소에 각종 소방시설의 사용방법에 대해 철저히 교육해 응급상황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알도록 해야 한다. 일반인들은 주민센터 등에서 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할 수 있도록 해 화재나 응급 상황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소화기 사용법이나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 곳에서 이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와 더불어 각종 안전교육과 위험상황에 대한 대피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종 위험요인이 증가하는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안전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해 우리의 생명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용승 기자 credit_v@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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