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엮자: 신현림 |걷는나무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박단비] 시는 어릴 때부터 어려웠다. 사람마다 해석이 너무 다르고, 지나치게 압축적이었다. 겨우 문장 하나를 이해하는데 내 삶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사실이 효율성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어려서, 다양한 경험이 부족해서 이해가 안 되는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시는 좀 더 나이 들어서나 즐겨보자 했더랬다.
시는 30대가 되어도 어려웠다. 소설이나 에세이, 하물며 자기계발서 앞에서도 시집은 항상 뒷전이었다. ‘이 어렵고 재미없는 걸 무슨 맛으로 읽어’하며 들었다 놓기를 수차례 반복. 이제는 나이도 적지 않고 꽤나 다양한 경험도 해봤는데 아직도 내게 허락된 시는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하게 시가 읽고 싶어졌다. 아기를 재우고 난 조용한 밤이면 시 한 편 읽어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내게 주어진 아주 짤막한 시간, 하필 무언가를 똑바로 인지할 정신머리가 없는 지금. 그래서 이따금 충동적으로 시집을 펼쳤다.
처음부터 있어 보이는 시집을 펼쳤다 너무 어려워 이내 덮었다. 그러다 집에 있던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을 발견했다. 이 책에는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비교적 직관적인 해석이 가능한 시들이 담겨 있었다. 초보에게 딱 어울리는 수준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하나씩 까먹는 시 맛이 제법 좋았다. 조용한 밤 내 머릿속에 담기는 문장이, 단어가 좋았다. 짤막한 것을 곱씹을 때마다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전에는 비효율적이라 느껴졌던 것이 오히려 효율적으로 느껴졌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니? 오히려 좋아.
시집의 그럴싸한 외관, 예쁜 표지 디자인에 반해 덥석 집었다가 질색팔색하게 된 사람들이 분명 있겠다. 그런 경험을 한두 번 하다 보면 ‘시는 나랑 맞지 않아’, ‘시는 어려워’ 하게 될 거고.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보고야 알게 됐다. 모든 취미에는 내게 맞는 스타일이 있고, 단계가 있음을 말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면 대중이 좋아하는 시부터 찬찬히 즐겨보라. 조금 유치해 보이는 입문용 시집부터 일단 들어보라. 해가 뉘엿뉘엿 지는 퇴근길에, 텅 빈 자취방을 바라보며 묘한 헛헛함을 느끼는 늦은 저녁에, 가족 모두가 잠들고 난 조용한 새벽 시간에. 릴스만큼 짧은 시간만 투자하면 읽을 수 있는 고 짧은 시가 가슴 깊이 와닿는 순간이 분명 있을 거다. 고 짧은 시를 오래도록 곱씹는 순간이 있을 거다. 시는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다음으로 초보 티 팍팍 나는 시집 몇 권을 더 지나, 제법 있어 보이는 표지의 시집을 펼치기 시작했다. 쉬운 시는 쉬운 대로, 어려운 시는 어려운 대로 또 해석하는 맛이 있더라.
이 모든 영광을 시의 맛을 알게 해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에게 바친다. 샤라웃 투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북에디터 박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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