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황재균(37, KT 위즈)은 대인배였다.
수비수의 호수비와 감탄사는 야구의 묘미 중 하나다. 그런데 그 수비수에게 막혀 안타 하나를 손해본 타자가 그 수비수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낸다?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2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KT 위즈가 키움 히어로즈에 2-0으로 앞선 1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 KT 베테랑 타자 황재균이 첫 타석에 들어섰다. 키움 선발투수 정찬헌을 상대로 볼카운트 1B서 2구 바깥쪽 134km 패스트볼을 힘 있게 밀었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났지만, 황재균의 대응이 좋았다. 그런데 키움 우익수 원성준(24)이 이 타구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절묘하게 걷어냈다. 한 마디로 잘 치고 잘 잡은 장면.
이후 황재균의 반응이 기 막혔다. 잠시 허무한 웃음을 짓더니 원성준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황재균이 원성준의 수비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비록 자신의 타율은 내려갔지만, 황재균은 상대의 좋은 플레이를 치켜세우며 자신의 가치도 끌어올렸다.
사실 타자가 상대 호수비에 막히면, 황재균처럼 해당 수비수를 향해 박수를 치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상대 호수비가 나올 때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욕을 하거나 헬멧을 내동댕이 치는 선수들도 있다.
1000만 관중 시대를 바라보고, 중계방송을 통해 안방에서도 생생하게 현장감을 느끼는 시대에 어울리는 언행이 아니다. 황재균의 박수는 그래서 박수 받을 만했다. 더구나 황재균은 6회 결승 좌월 솔로포로 호수비의 아쉬움까지 깨끗하게 씻었다.
한편으로 원성준의 호수비는, 본인과 키움 모두에 의미 있었다. 원성준은 성균관대와 최강야구 몬스터즈에 몸 담던 시절 주로 유격수를 봤다. 그러나 프로에 지명되면서 외야수로 변신했다. 키움 내야가 상대적으로 빡빡하다. 구단은 김혜성이 내년에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송성문이란 코어에 장기적으로 이재상, 고영우를 주력으로 육성할 계획을 잡아둔 상태다.
대신 원성준이 타격에 강점도 있으니 외야수로 승부를 보는 게 낫다는 내부의 판단이 있었다. 마침 최근 키움 외야는 줄부상이다. 장재영의 부상과 이형종의 부진에 의한 2군행을 시작으로 로니 도슨과 이용규의 시즌아웃까지. 원성준에겐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28경기서 73타수 19안타 타율 0.260 2홈런 9타점 7득점 OPS 0.701. 아직 표본이 적지만, 기회를 꾸준히 주면 뭔가 보여줄 가능성이 있는 우량주로 분류된다. 실제 이날 KT전서도 4회 우완 조이현의 포크볼에 속지 않고 잡아당겨 1타점 우전적시타로 연결했다.
키움은 전통적으로 가능성 있는 신예들의 1군 중용을 머뭇거리지 않는다. 홍원기 감독도 다른 감독들보다 이런 측면에서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원성준으로선 지금부터 시즌 마지막까지 1군에서 살아남으면 2025년엔 시작부터 1군에 도전해볼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어쨌든 키움 외야에서 장기적으로 확실한 주전은 이주형 한 명이다. 8~9월은 원성준이 공수겸장 외야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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