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광주 박승환 기자] "내 루틴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은 2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12차전 홈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투구수 69구, 7피안타(2피홈런) 1볼넷 7탈삼진 4실점(4자책)을 기록했다.
올해 김도영의 최연소-최소경기 30홈런-30도루, '소년장사' 최정(SSG 랜더스)의 역대 최다 홈런 등 무수히 많은 신기록이 만들어진 가운데, 21일 또한 새로운 역사가 탄생했다. 바로 양현종이 송진우를 뛰어넘고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새롭게 작성하고 10년 연속 100탈삼진을 손에 넣으며 이강철 KT 위즈 감독-장원준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직전 등판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4삼진 밖에 뽑아내지 못하면서 미뤘던 금자탑을 마침내 쌓아 올린 것이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양현종의 기록파티가 시작됐다. 1회 선두타자 황성빈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때에는 10년 연속 100탈삼진, 2회 나승엽을 삼진 처리했을 때에는 송진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리고 3회 윤동희에게 하이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을 끌어내는 순간 양현종은 개인 통산 2049번째 삼진을 손에 넣으며 마침내 송진우가 보유하고 있던 역대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우고 '최정상'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았다.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기록 달성의 기쁨과 달리 10승과는 연이 닿지 않았다. 4회까지 탄탄한 투구를 거듭하던 양현종이 5회초 노진혁에게 추격의 솔로홈런을 맞은 뒤 손호영에게 일격을 당하면서 순식간에 4점을 헌납했고, 5회를 마친 시점에서 투구수에 여유가 있었으나, 6회부터는 투구를 이어가지 못했다. 따라서 노 디시전으로 경기를 마무리하게 됐는데, 다행히 KIA가 재역전승을 거두면서 양현종은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로부터 엄청난 축하를 받았다. 1군에 소속된 모든 선수들이 양현종의 대기록에 활짝 웃었다.
축하파티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양현종은 "언젠간 깰 기록이라고 생각했고,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정말 뜻깊은 기록으로 남겠지만 글쎄"라며 "삼진에 대한 큰 욕심은 없다. 다만 탈삼진왕을 한 번은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그래도 야구를 하면서 삼진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삼진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닝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던지고 싶다. 송진우 선배님의 말도 안 되는 이닝이 수치가 있지만, 아프지 않는다면 그에 근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역대 최다 탈삼진이라는 새역사를 쓴 것도 대단하지만, 양현종의 기록이 더 빛나는 배경엔 꾸준함이 있다. 양현종은 프로 무대를 밟은 뒤 단 한 번도 '삼진왕' 타이틀을 손에 넣지 못했던 투수이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시즌 동안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올린 결과 가장 높은 곳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게 됐다. 가장 위대한 타이틀을 손에 넣은 셈. 그만큼 철저하게 관리를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 이범호 감독도 21일 경기에 앞서 양현종의 자기관리에 혀를 내둘렀다.
꽃감독은 "양현종이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한 선수라는 게 느껴진다. 외국도 다녀왔고, 여러 문화도 배우고 왔다. 미국에서는 러닝 훈련을 자전거로 대체하거나, 다른 운동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은데, (양)현종이는 아직까지 러닝을 뛴다. 러닝을 통해 땀을 배출해야 다음 경기를 하는데 좋다고 느낀다. 그 모습이 대단하다. 러닝을 비롯해 운동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 전성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좋은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물론 우려도 섞여 있었다. 이범호 감독은 "한편으로 러닝의 양이 많으면 다리 쪽에서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이번이 기회가 된다면, 본인의 몸에 맞게 훈련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현종도 물론 이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예전에 비해 러닝의 양을 많이 줄였다. 하지만 루틴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지금껏 해왔던 것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양현종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건강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기록이 아닌가'라는 말에 "나만의 몸을 만드는 방식, 회복하는 방법이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드라이브라인과 새로운 훈련이 많이 생겼지만, 나는 이를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자신을 믿고,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다. 덥고 지치지만 내가 해야 할 운동은 정말 꾸준히 한다.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온 것 같다. 내 루틴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현종은 "물론 새로운 방식도 좋지만, 그에 따른 무서움도 있다. 러닝은 나이가 있다 보니 많이 줄이려고 한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남들보다는 더 많이 하려고 한다. 보강 훈련도 하지 않으면 '무조건 다친다'라는 압박과 주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그래서 최대한 꾸준히 하려고 한다"며 철저한 자기관리의 루틴이 만들어진 배경을 묻자 "아무래도 이강철 감독님이 내가 선발 투수로 완성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주입식과 강압적으로 많이 시키셔서 지금의 내 것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며 활짝 웃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양현종은 "2016년부터 루틴이 내 것이 됐다. 14년부터 꾸준히 선발로 뛰었지만, 그때는 트레이닝 파트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서 14~16년까지 3년 정도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프지 않고 마운드에서 던질 수 있는 몸이 만들어져야 했다. 그래서 16년부터 운동 스케줄에 확신을 줬다"고 설명했다.
10년 100삼진, 2053삼진으로 1위 자리에 오른 양현종은 이제 170이닝의 목표로 향해 남은 시즌을 소화한다. 이제 단 26이닝만 남았다. 양현종은 "생각을 해보니 144경기 중에 나는 114경기를 보고만 있더라. 그러면 30경기는 최선을 다해서 던져야 한다"며 "오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최다 탈삼진을 달성해 기분이 좋지만, 10년 연속 170이닝은 많이 벅찰 것 같다. 아마 10년 연속 170이닝은 정말 깨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 시즌이 끝나기 전 가장 큰 과제고, 내가 넘어야 할 목표"라며 두 주먹을 힘껏 쥐었다.
광주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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