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 룰루 밀러 |역자: 정지인 |곰출판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박단비] “인간, 어떻게 살아남았지?”
아이를 키우면서 줄곧 드는 의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먹는 일도, 소화하는 일도, 잠을 자고 배변 후 처리하는 일도, 어느 것 하나 스스로 해내지 못한다.
반드시 이 어린 생명체를 돌봐야 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태어나자마자 걷고 뛰고, 스스로 먹고 자는 여타 동물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다. 그러니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나약한 주제에, 의존적인 주제에 도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속단하긴 이르다. 시작은 미비하나 끝은 창대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이 비록 지독하게 나약하게 태어났지만, 기가 막힌 성장을 보여줄지도 모르지. 하하, 안타깝지만 아니다.
지구상 다른 생명체들에 비하면 인간 성장은 엄청나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지도 못하고, 가장 잘 헤엄치거나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 것도, 가장 멀리 보거나 가장 높이 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의문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았지? 이런 주제에 어떻게 지구가 우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살 수 있는 거지? 도대체 뭘 믿고?
“까마귀는 우리보다 기억력이 좋고, 침팬지는 우리보다 패턴 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고, 주혈흡충은 우리보다 일부일처제 비율이 더 높다.”(본문 중)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이런 착각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어떤 한 분류학자의 이야기를 곁들이며.
책 속에 등장하는 분류학자 데이비드는 자신 일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온갖 방법으로 물고기를 찾아내고, 자신 기준으로 분류하고 명명했다. 어떤 생명체에게 이름을 달아준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데이비드는 점점 자신의 ‘대단한 일’에 빠져 생명에 위아래가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는 비단 데이비드만 하는 착각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상 수많은 생명체를 관찰하면서 흔히 이런 착각에 빠진다. ‘우리는 저들보다 우월한 존재다’, ‘우리는 저들을 분류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대단한 존재다’ 등. 완벽한 착각이다.
우리나 우리 외 생명체나 똑같이 그냥 지구라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 생명이 더 중하다거나 더 우월하다거나 하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 이야기를 담은 과학책이면서 인생의 다양한 가치관, 정의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책이다. 또, 어떤 누군가 삶을 보여주는 에세이이자 기록물이면서, 동시에 여느 창작물보다 더 극적인 부분이 있어 소설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재밌고, 흥미롭다. 완벽한 문과형 인간이지만 금세 읽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재미는 문체가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역자, 편집자가 무던히 노력했음이 분명하다. 잘 통하지 않을 외국 농담이 제법 웃기고, 글이 막힘없이 읽혔다.
나 역시 편집자이기에 그들의 노고를 언급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덕분에 양질의 이야기를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땡큐!
|북에디터 박단비. 종이책을 사랑하지만 넉넉하지 못한 부동산 이슈로 e북을 더 많이 사보고 있다. 물론 예쁜 표지의 책은 여전히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북에디터 박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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