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우리는 원 큐에 끝내야죠"
두산 베어스 곽빈은 2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16차전 원정 맞대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투구수 90구, 4피안타 3사사구 7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하며 시즌 15승(9패)째를 수확했다.
전날(25일) NC 다이노스가 SSG 랜더스에게 패하면서 4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두산은 제 손으로 순위를 결정짓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롯데를 꺾기만 해도 SSG의 결과에 상관 없이 4위를 확정지을 수 있지만, 반대로 NC가 SSG를 잡아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찬스에서, 타 팀의 결과에 상관 없이 순위를 결정하기 위해 4일 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한 '토종에이스' 곽빈을 출격시켰다.
이승엽 감독은 경기에 앞서 "NC가 어제(25일) 이겼다면 쉬고 준비를 했을 텐데…"라며 "팀을 봐서, 개인을 봐서라도 곽빈이 승리 투수가 되는 것이 베스트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컨디션이 좋을 때 피칭을 하듯이 자신감 있게 던져주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베테랑과 어린 선수들이 합을 잘 맞춰서 (곽)빈이를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역시 토종에이스였다. 곽빈은 1회 빅터 레이예스에게 안타를 맞은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위기 없이 롯데 타선을 잠재우며 경기를 시작했다. 첫 위기도 잘넘겼다. 곽빈은 2회 시작부터 전준우와 나승엽에게 연속 안타를 내주며 1, 2루 위기에 몰렸으나, 윤동희와 노진혁을 연달아 삼진 처리하는 등 후속타자들을 모두 잠재우며 무실점을 기록했고, 3회에도 스코어링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냈지만, 결정적인 한 방을 억제하며 순항했다.
어쩌면 가장 큰 위기는 4회였다. 곽빈은 선두타자 전준우를 삼진 처리한 뒤 나승엽에게 볼넷, 윤동희에게는 몸에 맞는 볼을 기록하며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래도 곽빈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고, 노진혁을 삼진 처리한 뒤 정보근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내며 다시 한번 위기를 탈출했다. 그리고 5회 2사 2루를 극복한 뒤 6회에는 전준우-나승엽-신윤후로 이어지는 타선을 삼자범퇴로 돌려세우며 퀄리티스타트(6인이 3자책 이하)와 함께 시즌 15승 요건을 손에 쥐었다.
제 몫을 다하고 마운드를 내려갔지만, 경기는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했다. 7회말부터 불펜진이 한 점씩을 내주면서 9회말 수비에 돌입하기 전까지 점수차는 2점에 불과했던 까닭. 특히 9회말에는 '마무리' 김택연이 턱 밑까지 추격을 당하는 등 1사 만루의 위기를 자초하면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까지 펼쳐졌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김택연이 1사 만루에서 강승구를 삼진, 오선진을 중견수 뜬공으로 묶어내면서 마침내 두산은 자력 4위를 확정, 곽빈도 15승으로 다승 공동 1위로 올라섰다.
지난 2019년 이영하가 17승을 수확한 이후 두산 토종 선발 투수가 15승을 기록한 것은 곽빈이 처음. 이에 두산 선수단은 경기가 끝난 뒤 방송사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곽빈의 뒤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가 종료된 직후 곽빈에게 물폭탄 세례를 안기며 15승을 축하했다. 곽빈 또한 별다른 저항(?) 없이 동료들의 축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기쁨을 만끽했다.
'15승을 하고 맞는 물 맛은 다른가'라는 물음에 "다르네요"라며 "사실 어제(25일) NC가 이기면 오늘 등판을 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하느님의 계획인 것 같다. 15승을 선물해 주시려고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곽빈은 다승왕 타이틀에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4위 확정을 더 기뻐했다. 그는 "사실 부담이 되진 않았다. 다승왕은 내려놨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원)태인이가 받아야 한다. 태인이는 3점대 선수면, 나는 4점대 선수다. 태인이가 훨씬 잘 던졌기 때문에 괜찮다. 이미 카톡으로 '축하한다. 네가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며 "태인이가 던져서 다승왕을 받으면 축하할 일이다. 다승왕 보다는 빨리 4위를 확정 짓고 싶었다. SSG가 오늘(26일)도 이긴 것 같은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곽빈은 15승을 손에 넣으면서 양의지로부터 '큰 선물'을 받게 됐다고. 그는 "(양)의지 형께 작년에 '15승을 하면 선물을 해달라'는 제안을 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셨다. 사실 15승이 야수의 도움 없이는 절대 안 되지 않나. (양)의지 형도 시즌 막바지가 되면서 '부담이 된다'고 하시더라. 다행히 15승을 해서 형들께 너무 감사하다"고 웃었다. 다만 선물 내용은 '비밀'에 부쳤다.
이승엽 감독은 26일 경기에 앞서 와일드카드 1차전 선발로 곽빈을 내세웠다. 선발 고민이 큰 두산 입장에서는 믿고 낼 수 있는 카드가 곽빈밖에 없는 상황. 올해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167⅔이닝을 소화해 지칠만 하지만, 두산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곽빈은 지난해 와일드카드 1차전에서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3⅔이닝 동안 4피안타(2피홈런) 3볼넷 4탈삼진 5실점(5자책)으로 무너졌고, 두산의 가을야구도 단 1경기로 종료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이에 곽빈은 "(안)우진이와 자주 연락을 하는데 '올해 최다 이닝인데 어떡하냐. 너무 힘들다'고 했는데 단호하게 '이겨내라'고 하더라. 어차피 이겨내야 한다"며 "작년은 내가 망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설욕해야겠다는 느낌보다는 후회 없이 팀원을 믿고 제 공을 던져보겠다. 우리는 원 큐에 끝내야죠. 타자 형들을 믿고, 나는 나를 믿고 던지면 당연히 이길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올라갈 것만 생각하고 있다. KT든, SSG든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하고, 더 높은 LG와 삼성을 이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끝으로 곽빈은 윤동희를 향해 "(윤)동희가 몸에 맞는 볼에 민감한 타자인 것을 안다. 바깥쪽을 보고 던졌는데, 컨트롤이 안 됐다. 너무 미안해서 계속해서 사과를 했다. 그래도 큰 부상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다행히 윤동희 또한 손바닥 부분에 공을 맞으면서 큰 부상을 피했다.
부산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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