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선을 지키는 사회, 선을 넘는 사회 |저자: 미셸 겔펀드 |역자: 이은진 |시공사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북에디터 정선영] “결혼했어요? 남자친구 있어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했다.
오가며 안면 정도 있는 사람이 지나쳐가는 내게 갑자기 이렇게 묻더니,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을 만나세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빡빡해 보이나?’, ‘고리타분해 보이나?’ 그러다 마흔이 넘은 내게 ‘애가 몇 살이냐는 질문이 아닌 게 어디냐’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개인 결혼 유무나 나아가 자녀 유무에 관심이 많다. 초면에도 이런 질문을 서슴지 않는다. 반면 네덜란드나 뉴질랜드, 스페인 같은 곳에는 이 같은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미셸 겔펀드는 <선을 지키는 사회, 선을 넘는 사회>에서 이런 차이를 느슨한 문화-빡빡한 문화로 설명한다.
겔펀드 연구에 따르면, 빡빡한 사회일수록 성실성, 자제력이 중요시되며, 관습, 규칙 준수, 체계 갈망 등 특징이 나타난다. 반면 느슨한 사회일수록 관용, 창의력이 중요시되며, 그에 따라 협동 부족, 도그마 거부, 충동성, 모험이나 혁신 지향 등 특징이 나타난다.
브라질, 스페인, 뉴질랜드, 미국, 네덜란드 등이 대표적인 느슨한 사회이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싱가포르, 우크라이나, 터키 등이 대표적인 빡빡한 사회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빡빡함-느슨함은 경제 발전 정도와 어떤 선형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리적으로도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빡빡함 문화-느슨한 문화를 갖게 된 원인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생태적이거나 역사적인 위협 유무에 있다. 즉 재난, 질병 혹은 침략, 내분 등의 강도 높은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나라는 생존과 사회 유지를 위해 규율, 질서를 강조해야 했다.
이 빡빡함-느슨함은 사회 경제적 집단 안에서도 볼 수 있다. 빈부에 따라 노동자 계층이라 부르는 하류층 사람과 명망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상류층 사람의 삶과 경험은 매우 다르다. 저자에 따르면, 상류층 사람들은 이 세상이 안전하고 자신을 따듯하게 맞아준다고 느끼지만,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무시무시한 위험투성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자 계층 사람들은 까딱 잘못하면, 그러니까 직장을 잃어 언제든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느끼며 살아간다.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산업재해 같은 부상과 주거지의 취약한 치안 문제로 인한 신체적 위협도 안고 있다. 이런 위협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이들의 자식은 용인되는 행동 폭이 좁고, 더 강한 규칙과 감시 속에서 자란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규칙을 지켜야 한다.
반면 상류층 사람들은 새로운 길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돈이 있으면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류층 가정은 문제가 생겨도 안전망이 있다는 걸 알기에 자식들에게 모험하라고 가르친다. 노동자 계층과 달리 위협에 직면할 일이 잘 없어 규칙을 깰 여유도 있다. 그에 따라 사회 관습이나 개인 취향에 있어서 느슨하고 관대한 견해를 갖는 경우가 많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사회 규범을 준수하려는 열의가 약한 나머지 난폭 운전을 하는 등 비윤리적 행동을 노동자 계층보다 더 하는 경향이 있다. 간단히 말해 ‘선을 넘는’ 행동은 느슨한 사람, 느슨한 사회에서 많이 나타난다.
대개 우리는 비슷한 계층,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끼리 어울려 산다. 그러다 보니 빡빡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느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만났을 때 곧잘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각 사람들에게는 빡빡함-느슨함 스펙트럼상 디폴트값이 있음을 강조한다. ‘선을 넘는다’고 생각되는 사람, 심하게 안 맞는 사람은 그저 ‘스펙트럼상 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빡빡함-느슨함이라는 프레임은 각기 다른 집단이나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 다름이나 차이의 원인을 알고 나면 이해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편 가르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요즘, 다름을 인정하고 특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보면 어떨까. 우선 나부터. ‘저 사람은 느슨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구나.’
|북에디터 정선영. 책을 들면 고양이에게 방해받고, 기타를 들면 고양이가 도망가는 삶을 살고 있다. 기타와 고양이, 책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삶을 꿈꾼다. 인스타그램 도도서가
북에디터 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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