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내 경우, 외국에서 한인 민박에 묵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말이 통하는 주인장을 통해 여행 정보를 얻으려는 것. 그게 아니라면 위치도 좋지 않고 시설도 부실한 한인 민박을 구태여 찾아갈 이유가 없다.
우리 가족이 런던에서 묵은 한인 민박은 아침에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대신 방이 어찌나 좁은지 여행 가방을 둘 공간도 마땅치 않았다. 숙박비도 결코 싸지 않았고.
하여간 베트남 호치민 한인 민박에 갔을 때 일이다. ‘여행자 거리’라는 데탐거리에 있고, 홈페이지 설명이 꽤 그럴듯 해 망설이지 않고 예약을 했는데….
그곳에 도착해 나는 두 번 크게 놀랐다. 우선, 우리 가족이 묵을 방은 3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계단이 너무 좁고 가팔랐다. 빈 몸으로도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야 할 판이니, 여행 가방을 들고 올라가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난감하여 한숨만 쉬고 있으려니, 현지인 직원이 들어주겠다며 나섰다. 우리에게 힘든 일이 그에게 수월할 리가 있는가. 낑낑대며 가방을 끌어올리는 그의 뒤를 따라 올라가며,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팁을 주면서 죄스러워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에베레스트산에라도 오른 듯 비장한 태도로 드디어 방에 도착했다. 이어 나는 아까보다 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방도 돈 받고 빌려준단 말인가?’
물론 숙박료가 비싼 숙소는 아니었다. 싼 맛에 예약한 게 사실이었다. 그래도 에어컨 룸이라며 팬 룸보다 돈을 더 받기에 어지간한 수준은 될 거라고 짐작했지, 그렇게 허름하리라고야 상상이나 했을까.
‘에어컨 룸’이라는 당당한 이름의 근거가 된 에어컨은 몇십 년 전에 생산된 초기 모델이었다. 머지않아 가전제품 박물관에서 만나게 될 제품 말이다. 후끈한 바람이 나오는 주제에 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밤새 벽을 흔들어대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침대였다. 침대를 얼마나 오래 사용하면 스프링이 그렇게 주저앉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망가진 침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자리가 너무 불편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밤잠을 설친 채 아침을 맞았다. 찌뿌둥한 몸으로 밖으로 나갔더니, 퀭한 눈을 한 젊은이가 하품을 쩍쩍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청년은 밤새 한잠도 못 잤다고 했다. 필경 그 방 침대와 에어컨도 우리 방이랑 같은 수준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겨짚었더니, 그의 말은 달랐다.
“에어컨 소리요? 에어컨 소리는 들리지도 않았어요. 밤새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굉음에 시달리느라 다른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니까요. 이건 방도 아니에요. 길거리에다 돗자리를 깔고 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아아, 호치민의 그 무지막지한 오토바이 물결 속에서 그의 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할수록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하여간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세계 어느 곳에 가나 숙소만큼은 많이 너그러워졌다. 아무리 시원찮은 숙소를 만나더라도 “호치민의 한인 민박에서도 묵었는데, 뭘.” 하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그곳이 우리 가족에게 준 단 하나의 선물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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