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나는 저기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라니까.”
이 말이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몰디브를 알았다. 인도양의 아름다운 섬나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머잖아 물에 잠겨버릴지 모르는 불운한 나라, 젊은이들이 신혼여행지로 선호하는 곳, 뭐 이런 것들 말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가 몰디브에 간 계기는 신혼여행도 아니었고,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아름다운 섬나라를 미리 봐두겠다는 비장한 목적도 아니었다. 웹 서핑 중 헐값에 나온 항공권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2018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 나는 믿을 수 없는 가격의 항공권을 발견했다. 유류할증료와 공항세 등이 포함된 홍콩항공 몰디브 왕복 항공권이 47만1800원이었다.
유류할증료와 공항세가 빠진 편도 항공권 요금이라고 해도 믿을 판인데, 눈을 비비며 몇 번을 확인해 봐도 모두 포함된 왕복 항공권이 맞았다. 심지어 홍콩 스톱오버(24시간 이상 경유지에서 체류하는 것) 수수료도 무료라고 했다.
‘세상에, 이게 웬 횡재야. 이걸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 이런 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붙잡아야 해’라며 부랴부랴 예약했다. 몰디브에 가서 뭘 할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항공권을 예약했으니 그다음 할 일은 숙소 예약이었다. 호텔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 숙소를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동남아 휴양지보다는 훨씬 비싼 편이었다. 슬슬 무모한 몰디브 여행 계획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설 대비 괜찮은 가격의 몇몇 리조트를 발견하고 환호했다. 하지만 여기엔 다른 문제가 있었다. 몰디브는 무수히 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어 육로로는 이동할 수 없다. 공항에서 리조트까지는 반드시 스피드보트나 경비행기를 이용해야 한다. 내가 점찍은 리조트는 거리가 멀어 왕복 항공료가 65만 원 남짓이라고 했다.
인천공항에서 몰디브까지 왕복하는 요금보다 수도 말레 공항에서 숙소까지 왕복하는 요금이 더 비싸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국제공항에서 가까워 스피드 보트로 이동할 수 있는 리조트를 예약했다. 왕복 요금은 14만원. 그것도 적지 않은 금액이나 항공편보다는 저렴하므로 조금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리조트는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아마도 중저가 숙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래도 4박에 144만4000원으로 늘 짠내 풍기며 다니는 내게는 등이 휘는 금액이었다. 몰디브니까 감수해야만 하는 수준이었다.
이 숙박비는 사실 객실에 더해 세 끼 식사가 포함된 조건이었다. ‘여행 가서 돈 아끼자고 쫄쫄 굶을 수는 없는 일 아냐? 그렇다고 몰디브까지 가서 컵라면 끓여 먹는 건 너무 없어 보이잖아. 이번엔 그냥 돈 좀 쓰지 뭐’ 하며 세 끼 식사 포함으로 예약을 마쳤다.
그러나 막상 몰디브에 도착해서는 후회했다. 리조트 식사가 너무 부실해서? 아니다. 식사는 퍽 좋았다. 비싼 숙박비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문제는 리조트 안에서 할 일 없이 빈둥대다 보니 세 끼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게 부담스러웠다. 숙박비를 생각하면 아까워서 알차게 챙겨 먹고 싶은데, 먹고 나면 그것이 고스란히 살로 가는 게 느껴져 괴로웠다.
몰디브 체류 4박 5일은 만족스러웠다. 밀가루처럼 희고 고운 모래와 티 하나 없이 투명한 푸른 바다는 종일 바라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았다. 야자수 그늘 아래 누워 솔솔 부는 바람을 느끼는 호강은 내가 늘 꿈꾸던 것이었다.
다만, 너무 든든했던 삼시세끼가 문제라면 문제였달까. 그러니 다시 몰디브에 가게 된다면, 그때는 두 끼 포함으로 예약하겠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먹고, 조금 이르게 저녁 먹으면 딱 좋겠다.
이런…. 그 멋진 몰디브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고작 과식하여 괴로웠던 사연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니, 나도 참 특이한 사람이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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